티스토리 뷰

SUEATY/기록

[책] 여덟 단어

Sueaty 2021. 12. 9. 03:57

한 번 믿음이 생긴 작가의 책은 지속적으로 찾아 읽게 되는 것 같다. 전부를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글자전쟁'으로 입문한 김진명 소설가의 책들은 시험기간에 읽으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히사시노 게이고, 김영하,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사실 소설은 작가를 가린다기보다는 유명하면 닥치고 읽어보는 스타일이라 이렇다 할 주관은 없지만 인문 쪽으로 넘어오면 personal standard가 존재한다. 유현준 교수님의 책은 전부 읽었고(친구가 유현준 교수님 수업 듣는데 너무 부럽더라. 그냥 연예인 같은 존재랄까ㅋㅋ), 이동진 평론가의 글은 굳이 책이 아니어도 따로 찾아보기도 하고, 허지웅씨의 글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여덟 단어'의 저자 박웅현 CD(아, 물론 지금은 TVWA 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지만 CD...라는 명칭이 편하다)님의 책도 전부 읽었다. 이미 너무 유명한 '책은 도끼다', '다시, 책은 도끼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전부 책장에 꽂혀있다. 이번에 읽은 책 '여덟 단어' 역시 박웅현 CD님의 책이라 이끌림이 당연했다.

 

분명 시대는 바뀌었다

우선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초판이 2013년, 개정판 전자책이 2018년에 발행되었다는 점이다. 분명 초판 발행부터 전자책 발행까지의 5년이라는 시간동안 시대가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리고 2022년을 앞둔 지금, 이 책은 거의 10주년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간혹가다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우는 단락들이 있었으나 CD님이 내 부모님보다 몇 학번 위 세대라는 것을 감안하고, 그 분들이 익숙한 사회상이 지금과 다름을 고려하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 있다.

 

이 부분을 미리 언급하고 가는 이유는 내가 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없었던 이유가 시대상 차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가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보자면, 7강 "소통"이라는 챕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한 30분 정도를 지요하게 묻고 나서야 왜 그 친구의 와이프가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됐습니다.
친구의 말을 종합해보면, 새벽 한 시에 친구들이 불시에 그 집에 들이닥쳤는데도 그 아내가 술상도 봐주고 남편 친구들이 불편하지 않게 잘 대해줬나 봅니다.

 

물론 새벽에 찾아온 손님을 문전박대했다면 "너무했다..." 라는 평을 받을 수는 있지만 불청객일 수도 있는 새벽 손님의 술상을 봐준 것을 보고 친구의 와이프가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한 경험을 굳이 예시로 쓰는 것도 이해는 잘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20대 중반 미혼의 사회 초년생이 느끼기에는 그렇다는 것.

 

자존

저자의 생각을 담은 책은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제일 첫 번째 챕터를 '자존'인 것에서 느껴지는 모습이 분명 있을 터이다. 책은 CD님의 어린 아이가 있는 후배의 질문으로 시작하는데, "무엇을 가르쳐야 행복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요?" CD님은 그 대답으로 '자존'을 선택한다. 난 올해 25이고 활발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혹은 넘쳐보이는?ㅎㅎ) 성격을 지녔다. '뭘 해도 될 것이다'라는 근자감 덕분에 좌절하더라도 회복탄력성이 좋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야 직성이 풀리는 도전 정신도 갖췄다. 누군가가 내 부모님께 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실까?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자존은 중요한 것 같다. 책에서 나온 것처럼 기준점을 밖에 두어 타인과 계속 비교하며 눈치보지 말고, 내 잣대를 분명히 세울 수 있도록 기준점을 내 안에 두라는 점에 깊히 공감한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난 여태 그런 태도로 삶을 대했던 것 같다. 모두가 내 적성은 문과가 맞다고 외칠 때 스스로 이과를 택했고, 2학년 때 떠나는 교환학생을 3학년 2학기에 떠나 1년동안 있었고, 다들 교환학생을 즐기러 갈 때 난 공부하겠다고 아시아의 MIT라 불리는 NTU로 떠났다. 돌아와서 남들 자격증 공부할 때 네이버 부스트캠프에서 iOS 개발자 교육을 받았다. 남들이 어떤 패스를 선택하던 내게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고 나만의 점들을 연결해서 별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난 현재 충분히 즐겁게, 그리고 미래 지향적으로 살고 있는데 아마 박웅현 CD님도 이런 맥락에서 자존을 고르신게 아닐까 싶다.

모두가 보는 것 '시청' 하지 말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 '견문'하라. 이 챕터에서 가장 핵심적이었는 말이었는데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네 명이 술을 마실 때 그냥 마시는 사람과, "창밖 좀 봐. 가을비가 내린다" 하는 사람의 삶에는 차이가 있어요.
그러니 순간을 온전히 살려면 촉수를 예민하게 만드세요.

엄마는 항상 하늘에, 구름에, 회오리 모양으로 떨어지는 낙엽에 감탄하는 사람인 반면 난 항상 저게 뭐가 예쁘냐, 신가하냐며 딴지를 거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엄마와 나의 삶에 큰 차이가 있을까? 그런 엄마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사람이고 사소한 것에 감정이입을 하며 알게모르게 창의성을 키워나갔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책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여행지에서 랜드마크만 찾아가서 보지 말고 내키면 동네 카페에서 동네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가서 구경도 하면서 거기 사는 사람처럼 여행하는거야. ...(중략)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서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야. 마음의 문제야. 그러니까 생활할 때 여행처럼 해.

드레스덴, 독일의 작은 도시. 혼자 떠나 유럽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 하나의 도시를 꼽으라면 바로 여기 드레스덴. 이틀만 머무르기로 했는데 하루를 더 있었다. 첫째날은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나머지 2일은 벤치에 앉아 이동식 그랜드 피아노를 끌고와서 공연하는 흰색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의 피아노 공연을 봤고, 같은 블루베리 치즈 젤라또를 먹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엔 야외 카페에 앉아 아이스 라떼를 주문하고 앉아 멍 때리다 맞은편에 있는 할머니들께 왜 여행을 왔는지 설명했다. 아주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겪은 3일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정말 평범했어서. 뭘 열심히 보려고 하지도, 사진으로 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른 곳들은 "아 담에 또 와야지"하는 생각이 남았지만 드레스덴 만큼은 다시 방문해도 그 때처럼 잘 머물다 갈 수 없다. 그렇게 나만의 방식대로 시청이 아닌 견문했던 것 같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