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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ATY/기록

노잼 인생 살아가기

Sueaty 2021. 1. 19. 01:07

(2020.08.25에 작성 한 글을 옮겨왔습니다.)

"나 이제 안 그래ㅋㅋㅋ"

얼마 전 친구에게 DM이 왔다. 재수 시절을 함께했으니 햇수로는 4년지기다. 하지만 친구는 부산에 살고 난 안양에 있으니 1년에 겨우 시간을 맞춰 1번 볼까 말까한다. 게다가 지난 1년을 내가 한국에 없었으니 이 친구 만난지 1년이 훨씬 더 되었다는 말이네. 친구는 인스타 디엠으로 유튜브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친구는 츄더님의 정말 옛날 영상을 발굴해 보내왔다. (아 참고로 츄더님 영상 중 [Ariana Grande - Santa Tell Me COVER | ♪ Chrismas ♪] 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상이다. 창법 분석하는게 끝장나 주시는 분) 영상을 틀어봤는데 웃음이 났다. 영상이 웃긴건 당연하고, 친구가 무슨 생각으로 링크를 보냈는지 알겠어서 1분 42초 내내 입꼬리에 힘을 준 채 감상했다. 그런데 이걸 어째. 친구 기억 속 난 2년 전의 조수정이었다.

나 재밌는 사람이고 웃긴 사람이다. 남들 웃기기 좋아하고, 길거리에서 엉덩이 흔들기 좋아하고, 잇몸까지 보여주면서 웃어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젠 잘 그러지 못한다. 언젠가 부터 진지벌레가 되어 있었고, 걸을 땐 앞만 보고, 웃을 때도 소리 내어 웃기 보단 눈으로 먼저 웃는다.

차분해지고 싶었던 것일까

어른이 되는 과정, 철 드는 과정이라고 포장하고 싶지 않다. 그저 어느 순간 부터 조금 더 차분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아니 지금 이 문장에서 10분째 멈춰 있다. '어느 순간'이라니. 좀 더 구체적일 수는 없나.) 생각해보니 올해부터 많이 변한 것 같다. 내 기분 보다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생각해 볼 기회들이 찾아왔고,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졌고, 웃어 넘기는 것보다 결단력 있는 한 마디가 더 큰 영향을 미침을 깨달았다. 그래서 차분해지고 싶었다. 매사 웃고있는 사람 좋은 존재가 되기 싫었고, 상대를 설득해서 다수에게 주어진 기회가 내 손이 먼저 닿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렇게 차분해지고 싶어져서 조금, 아주 조금 차분해졌는데 노잼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웃긴 표정으로 길거리에 멈춰서서 "호잇!" 한 마디를 외치지 못하겠다.(아 이건 이상한 사람인가..?) 더 이상 백화점 CCTV를 지날 때마다 V를 못그리겠고 술 자리에서 큰 소리도 못내겠다.

얼마 전 띠동갑인 사촌 동생이 흘러가는 말로 내게 한 마디 했다.

" 언니 유튜브 노잼이야. 원래 언니처럼 하면 구독자 많아질걸? "

많은 사람들에게 내 모습은 "방가네" 방효진님(고은아) 이미지였던 것일까? 고은아님이 유튜브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카톡도 무지 받았다. "니도 그냥 저렇게 해". 하지만 내가 변한 것은 "엄마 아빠가 부끄럽지 않게 살자"(이 얘기는 기회가 되면 따로 글로 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의 영향이 크기에 저 깊은 내면 속 구석 탱이에 잠옷 바지에 팔 넣고 꽃게 흉내내고 싶은 욕망을 걸어 둔다.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

빠른(疾) 바람(風)과 노한(怒) 파도(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자) 나의 격했던 질풍노도의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이 제 2의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 써봤다. 16, 17살은 흔히들 '감정의 격변기'라고 표현하며 질풍노도에 빗대지만 지금 난 '정체성의 격변기'에 있다.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남들보다 조금 더 드라마틱해서 바람과 파도를 끌어들였다.

사실 근 22,3년을 광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몇 개월 사이에 사람이 확 바뀌지는 않더라.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이성적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알지만 몸이 벌써 격하게 오버하고 있을 때. 어쩌면 '노잼'은 그저 컨셉, 대외이미지 정도로 끝날 수도 있지만 거센 바람과 매서운 파도가 지나고 고요가 찾아오면 공과 사, 광대와 노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이미지 관리가 철저한 **'독한 년'**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노잼 인생 살아가기

그래, 내가 노잼이 되었고 그래서 내 인생도 요즘 노잼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뭐래니 쟤"라고 한마디씩 할지도 모른다. 내가 바로 그 가만히 있질 못해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짹 스빼로우) 부류라서 어떻게 해도 인생을 노잼으로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 다양한 플랫폼에서 활동하고, 취미 부자에, 당연히 공부할 것도 산더미고, 장사도 한다.(방금도 '세탁기 거름망' 발주 넣고 왔다. 아싸!)

하지만 매사에 모든 것들을 진지하게 임하다 보니 노잼인생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솔직히 글을 다 쓰고 나니 노잼으로 살아가기와 노잼 인생 살아가기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노잼이 되었다고, 또는 되어간다고 해서 진짜 나를 잃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예전과 확실하게 하나 바뀐 것이 있다. 상대가 나로 인해 웃을 수 있으면 그저 행복했던 과거와 달리 요새는 내가 만들어 내는 성취감들로 부터 행복을 얻는 것.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노잼으로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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